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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더 퀸 The Queen> - 다이애나처럼 언론의 공격을 받으며 성장했던 왕실

by woohyuk_85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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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더 퀸 The Queen>

다이애나처럼 언론의 공격을 받으며 성장했던 왕실





영국 시간 2022년 9월 8일. 70년 동안 영국의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습니다. 오랜 세월 영국의 왕으로 군림했던 그녀는 2차 세계대전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현대사의 모든 굵직한 사건들을 지켜보았는데요. 21세기에 왕실이 웬 말이냐는 의견도 있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군왕다운 성품으로 영국 총리들의 멘토가 되었고, 영국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영국은 물론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존경을 받았고, 군주제를 찬성하지 않는 이들 중 일부도 여왕의 공로를 인정했죠.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통치기간 동안 위기가 없던 건 아닙니다. 특히 찰스 3세 국왕의 전처이자 윌리엄 왕세자의 어머니인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영국 왕실 최대의 위기를 불러온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생애 최대의 위기였던 그 순간에 대해 썰을 늘어봅니다. 물론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영화 <더 퀸>을 기준으로 정리합니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불행한 결혼 생활

우선 다이애나 스펜서와 찰스 3세의 결혼은 사기결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찰스 3세는 원래 카밀라 파커 보울스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찰스 3세가 입대한 후 돌연 결혼했는데, 이후에도 찰스 3세는 유부녀인 카밀라와 불륜관계에 빠졌고 이 관계는 다이애나와 결혼한 후에도 이어졌죠. 다이애나는 단지 귀족의 후손이면서 처녀라는 이유만으로 13살 차이 나는 아저씨 찰스와 결혼했고, 찰스의 안정적인 왕위 계승을 위해 왕손을 낳는 역할만 맡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이애나는 순순히 당해주는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었고, 방송에 찰스의 불륜을 폭로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봐도 다이애나는 결혼사기를 당한 피해자임이 확실합니다. 이 부분만 보면 다이애나에게 동정 여론이 몰리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다이애나는 그냥 불쌍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다이애나

다이애나 스펜서는 왕세자비 시절은 물론 이혼 후 사망할 때까지 각종 봉사활동과 사회활동에 참여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차 세계 대전 때 입대하거나 폭격 와중에도 런던을 지켰던 근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면, 다이애나는 시민들과 함께 하고 소수자, 약자들을 직접 도와주는 적극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수 있습니다. 방식과 세대는 다르지만 다이애나 역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처럼 왕실 사람 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죠. 스펜서는 당연히 영국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녀를 이용한 영국 왕실에 대한 분노는 정당했습니다.

자, 이제 영화의 배경이 된 앞 이야기를 다루었으니 영화 <더 퀸>을 보면서 왜 왕실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유지하려던 것과 변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영국 왕실이 욕을 먹은 이유

다이애나 스펜서가 사망하자 영국 국민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영국 왕실 역시 충격 받기는 마찬가지였죠. 왕손들의 친모가 사망했으니 예삿일은 아니니까요. 일단 영국 왕실은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이 언론에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 별장에 계속 머물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다이애나의 친정 식구들과 장례 절차를 가족장으로 정하죠. 일단 이 가족장은 다이애나의 친정이 먼저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왕실의 '일원이었던' 사람의 장례식은 당시에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례에 따르면 더 이상 왕실의 일원이 아닌 다이애나를 왕가의 장례식으로 대우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이애나를 존경하는 시민들은 영국 왕실 역시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예우를 다 해주길 원했는데, 여기서 영국 왕실의 가치관과 근대화된 영국 시민들의 가치관이 부딪히게 됩니다.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이 꼰대처럼 보이거나 공감 능력 제로로 오해 받았던

우선 영국 왕실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왕은 국민들 앞에서 언제나 근엄해야 하고 약한 모습(혹은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죠. 조지 6세의 통치 시기에 독일군의 런던 폭격이 있을 때에도 조지 6세는 버킹엄 궁전을 지키며 국민과 함께 했습니다. 다이애나의 죽음 이전에도 영국 왕실에는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선대에서는 감정을 절제하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고, 여왕은 그런 모습을 군왕다운 모습이라고 배운 사람입니다.












극 중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아무도 없는 골짜기에서 (관객조차 보지 못하게 뒤돌아 앉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여왕이라고 해서 다이애나의 죽음이 슬프지 않았던 건 아닐 겁니다. 그녀는 슬픈 와중에도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군주였으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흘러 계급에 대한 구분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지도자들과도 감정적으로 공감하길 원했습니다. 당시의 영국 왕실은 이런 국민들의 정서 변화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채 근엄한 모습을 유지하려다 민심을 잃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수나 꼰대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비극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그제야 깨달았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신중을 기해야 했다

두 번째. 다이 아내의 왕실 장례식은 영국 왕실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합니다. 우선 같은 상황을 다른 인물로 대입해보면 이 절차가 과연 '적법한 것'인가 대해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찰스 3세와 불륜관계였던 현부인 카밀라 파커 보울스가 찰스 3세와 이혼을 한 뒤에 사망한다면 그녀의 장례식 역시 왕실 장례식에 준해야 할까요? 아마 영국 국민 중 절반 이상이 반대할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죠. 같은 전 왕실 사람인데 왜 왕실 장례식을 못 해준다는 거지? 이율배반 아닌가?












감정이 메마른 비유라고 볼 수 있겠지만, 영국 왕실 입장에서는 왕실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왕실 장례식을 해주는 격이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왕과 왕비, 왕세자, 왕세자비의 적통 중 이혼한 사람의 사망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 왕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극 중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고민하는 왕실을 향해 토니 블레어 총리는 꽉 막힌 집단이라며 비난하지만, 영국이라는 나라는 입헌군주제로 오랜 세월 운영되어 온 나라입니다. 명예혁명을 통해 왕실을 유지하면서 총리와 내각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지만, 내각에게 권력을 준 왕실 역시 나라의 기관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그 왕실 절차를 함부로 어기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감정에 치우쳐 일을 진행하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도 있으니까요. 다이애나의 장례식 역시 결과적으로 보면 국민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이애나의 장례식을 왕실에 준하게 해 준 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시대와 부딪히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어느덧 영국은 세습으로 세워진 왕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따르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요.







세습된 규율을 어기면서 민심을 따르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왕실 장례식은 기존 왕실의 법도를 어기는 일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영국 왕실은 어디까지나 세습되는 직위이지 영국 국민들이 만들어준 자리가 아닙니다. 다이애나 역시 찰스 3세와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왕실의 일원이 되었지만, 그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통해 국민의 민심을 얻습니다. 선거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국민 투표로 멘토가 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토니 블레어 총리의 조언과 마지못해 받아들인 감이 있지만, 영국 왕실은 세습된 규율을 고집하지 않고 민심을 얻은 (투표를 받은 것과 다름없는) 다이애나를 예우함으로써 국민들의 민심에 공감하는 법을 배웁니다.







낯선 변화 앞에 신중한 여왕






영화 <더 퀸>에 나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서두르지 않고 일을 차근차근 진행합니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총리가 되어 불만이지만 총리 임명의 시간을 자연스레 가졌고, 다이애나의 사고를 접한 뒤에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왕손들을 보호했습니다. 자동차 사고로 계곡에 고립될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정비사를 불렀으며, 언론의 공격과 토니 블레어의 충고를 듣는 와중에도 극 후반을 제외하면 감정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선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신중하게 대처했던 거죠.



물론 그 와중에 90년대 방식의 민심을 읽는 방법에 서툴렀기 때문에 왕실 폐지론까지 나와 위기를 겪게 되었죠. 하지만 그녀는 젊은 총리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이애나 스펜서를 향한 추모 연설과 왕실 장례식으로 민심을 무마하고 왕실을 지켜냅니다. 영화 속에서는 여왕이 마지못해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듯 하지만 토니 블레어가 위대한 결단이었다며 위로하는 장면을 통해 여왕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존경심도 일부 표출합니다.







다이애나처럼 언론의 공격을 받는 왕실






영화 <더 퀸>은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례식을 통해 여왕과 민심의 갈등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언론에 의해 '다이애나처럼' 희생당하는 왕실에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왕실은 근엄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인데, 언론은 왕실이 슬픔도 느끼지 않는 감정 없는 괴물로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이후에는 다이애나의 장례를 왕실과 동등하게 하지 않는다며 '왕실의 절차의 애매함'보다는 왕실이 다이애나를 이용하고 버렸다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이런 언론의 움직임은 영국의 민심을 술렁이기 시작했고, 여왕과 적당히 거리를 두려 했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 곤란하게 만듭니다. 영화는 생전에 파파라치에게 시달렸던 실제 다이애나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영국 왕실(과 여왕) 역시 다이애나처럼 언론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는 다이애나의 죽음을 대하는 왕실의 태도를 선과 악으로 정하지 않으면서도 왕실이 다이애나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했을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비록 영국 왕실 역시 제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국민들의 미움을 받았지만, 그 미움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면서 국민들에게 다가가며 생존했던 겁니다. 왕이 아무리 장수한다고 해서 오래 왕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왕은 다양한 명분을 빌미로 언제든지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처세술은 정치적인 것을 넘어 한 명의 리더가 집단의 민심을 어떻게 읽고 변화했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왕님을 추모하며...






다이애나 스펜서가 세상을 떠나고 25년 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영국 국민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예전 뉴스 화면에서 다이애나의 죽음에 슬퍼하는 영국 국민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세습된 군주의 자리였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군주다운 군주였습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찰스 3세가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영국 왕실의 존폐 위기가 서서히 닥치고 있습니다. 다이애나 스펜서를 사랑했던 국민들은 카밀라를 새 왕비로 인정하지 않는 눈치이며, 영국은 경제 위기에 직면한 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물론 중국과 대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영연방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는 공화국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큰 산이고 큰 울타리 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찰스 3세 역시 엘리자베스 2세만큼의 용기를 보여주어야만 왕실을 유지하고 민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더 퀸>은 중대한 결정을 앞둔 리더가 꼭 봐야 하는 영화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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